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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대기 중에 인간에게 기생하는 식물의 꽃가루가 창궐합니다. 폐에 들어가는 순간 끝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방독면을 쓰고 다니고, 그것을 벗을 수 있는 순간은 정수된 물로 샤워를 할 귀한 기회가 생겼을 때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좀비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일 때보다도 더 '싱그럽게'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고개를 들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의 지붕에 가득히 서있는 그들을 보게 됩니다.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정글입니다. 불러보아도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방독면에 막힌 나의 목소리는 너무 멀고, 그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차라리 좀비 영화의 썩어가는 시체들처럼 우리를 무시무시하게 쫓아오기라도 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가만히 있는 수백수천의 좀비들 사이에 뛰어들어 도끼를 휘두르기도 합니다.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격자를 찢어발깁니다. 그의 내장은 썩어 나무의 유기비료가 됩니다. 방독면을 벗고 연인이었던 나무에게 입을 맞추며 꽃가루를 잔뜩 들이마신 사람은 하루이틀이 지나면 그 빽빽한 밀림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살입니다. 차라리 그 편이 좋을까요? 삶이 언제 끝날지 몰라 느끼는 괴로움을 시체나 나무는 느끼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두번째, 인류 문명은 식물에 뒤덮여 무너졌습니다. 항상 당연한 듯 누리고 있었던 첨단 공학은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급격하게 붕괴하고, 그 자리를 빠르게 번식하는 정글이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인간과 식물의 혼혈입니다. 사람이었던 것과 식물들이 한데 뒤섞여 그 뿌리는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마천루와 가장 단단한 강철을 모래성 부수듯 무너뜨렸습니다. 인간 건축 기술의 정점인 철근 콘크리트도 담쟁이의 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공장이 멈추고 컨베이터 벨트가 뿌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합니다. 식물은 많아도 성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이 남아나지 않아 의약학은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보했습니다. 공기 중에 항상 떠다니는 꽃가루 분진이 첨단기기에 쌓여 오작동을 일으키고 태양광 발전판에는 두텁게 쌓인 먼지가 그득합니다. 이제 가용 에너지라고는 수력과 소형 풍력발전 정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겨우겨우 틀어쥐고 있는 문명의 이기는 정수 시설과 호흡 필터 뿐입니다.


세번째, 모든 자원이 부족해졌습니다. 정글은 푸른 사막입니다. 밭작물은 거의 말라죽었습니다. 열매나 씨앗에만 모든 힘을 쏟도록 개량된 연약하고 인간의존적인 식물들은 땅 속의 질소를 미친 듯이 먹어치우는 경쟁자들을 이기지 못하고 도태되었습니다. 정글에 널린 식물들은 툭하면 독을 품고 있어, 굶주린 사람들이 입에 과즙 섞인 거품을 물고 픽픽 쓰러집니다. 지구 온난화가 사라지면서 혹독한 겨울이 다시 찾아와 이제 우리는 눈을 더 이상 반기지 않습니다. 물도 부족합니다. 꽃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물을 애써 정수해도, 병원균이 득시글거려 위생이 형편없습니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이제 동물원에서 탈출해 정글 안에 터전을 잡은 짐승과 불과 창만 가지고 마주쳐야 합니다. ― 총알은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여분의 호흡 필터를 가지고 있는 저기 저 사람에게 써야 하거든요.
밥을 굶을 수 있어도, 더러운 물을 마실 수 있어도, 짐승과 대적할 수 있어도,
숨을 그만 쉴 수는 없잖아요?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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